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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 귀신이 될뻔 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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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경북 성주 장자골 이라는 곳에 살고 있습니다. 공기 좋고 물좋고.. 맛난 참외도 잇는 곳이지요, 어릴 적 부터 집이 가난하여 부모님은 도지농사(땅을 빌려 농사짓는)를 지으시고 동네 나락(벼)를 털어주고 품삯을 받으셨지요 덕분에 저에게는 시간이 많이 있었습니다. 유일한 놀이터는 동네 앞 저수지에서 새우를 잡는 일이었지요. 새우를 잡아서 말리고.. 바싹 말려서 볶아서 설탕이나 맛소금을 뿌려 먹으면 얼마나 맛이 있는지... 지금은 먹을 것이 많아 그걸 왜 먹냐고 하지만 정말 별미였고 옆집 동생이랑 누가 많이 잡나.. 내기도 했지요 내기가 되면서 도구도 사용 했지요, 집에 있던 연두색 빨강색 대소쿠리들... 함바우 연못.. 일제 강정기 시대때 만들어진 못이고 한번도 마르지 않은 저수지라 큰 고기가 많아 낚시꾼들이 많이 왔었지요 월척 선배님들도 현재 성주 문화예술 회관 자리에 저수지가 있었는걸 기억 하시는지요..?? 붕어와 잉어도 많았지만 가물치도 많이 있었습니다. 학교 마치면 옆집 동생이랑 누가 큰 가물치를 발견하는지 책가방 들어 주기 내기도 하였지요 저수지 한바퀴 빙빙 돌며 낚시꾼들이 엉키거나 두고 간 바늘 봉돌 부러진 찌,부러진글라스대.. 지렁이 메주콩 호두과자?를 주워 손낚시도 해보고 가물치 잡으려고 릴 바늘 주어다가 붕어새끼 등 꿰기해서 추 없이 갈대막대 묶어다가 숨구멍에 띄워두고 새우잡다 오면 한번씩 잡히곤 했죠. 큰놈 일수록 주막에 아저씨들에게 인기가 좋았습니다. 꽤돌이 밭두렁 쌀대롱.. 많이 얻어 먹었습니다. 날씨 좋은 어느날.. 여느때와 다름없이 학교 갔다가 저수지를 한바퀴 빙 도는데 그날은 왜 인지 동생도 없고 혼자 저수지를 돌고 있는데 저수지에 배수가 많이 되어 상류쪽에 작은 웅덩이가 생겨서 가까이 가니 국해물이 확 일어 나는 것이.. 이야 오늘 횡제 했는데? 싶어서 신발이랑 양말이랑.. 버드나무 밑에 고이 벗어두고 책가방도 두고 살금살금 다가가는데! 한발이 쑥 빠지는 겁니다. 어? 이러면서 나올려고 한발에 힘을 주고 한발을 빼려는 순간 다른 발도 쑥 빠지는 겁니다. 아.. 부모님이 말하는 국해 쏘가 잇다더니.. 여긴갑다 싶어서 나올려고 안간힘을 쓰는데 이미 다리는 다 잠기고 허리춤까지 잠겨서 여기서 죽는갑다.. 싶어서 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 계속 외쳤는데 주막에서 술을 드시던 할아버지가 쉬하러 나오셔서 저를 발견 했답니다. 저기 누고? 누집아고?? 이러면서 달려 오셔서 펌프에 물을 펄때 사용하는 후두호스를 몇번이고 던져서 제 쪽으로 주고 그걸 잡고 두분이서 당겨서 겨우 빠져 나왔지요. 똥 오줌 지리는 것을 어릴때 경험 했습니다. 완전 국해를 뒤집어 써서 눈만 하얗게 보이는 저를 주막 샘가에 델다가 물을 뒤집어 씌워서 사람처럼 다시 만들어 놓으시고 혼구녕이 난 뒤에 우는 저에게 새우깡 한봉지를 손에 쥐어서 집에 보내 주셨지요. 집에와서 부지깽이로 할머니한테 두들겨 맞고 부모님한테 혼나고 며칠동안 국해냄새가 몸에 진동을 했었지요. 지금 생각하면 정말 그분이 아니었으면 빠져죽지 않았을까.. 부모님도 못보고 죽지 않았을까... 가물치 붕어 새우를 많이 잡아서 찌끼미가 저를 홀리지 않았을까..생각을 해봅니다. 저를 구해준 어른 중 한분은 돌아 가셨고 한분은 아직 저를 보면 말씀 하십니다. "아직 기기 잡으로 댕기나?? "예, 좋아 합니다." "그래, 기기 잡으로 가자! "예, 어르신." 읍에 다니실 때 걸어서 다니기에 제가 뵈면 읍까지 태워드리고 태워올라오고 했는데 보실때 마다 물으시지요.. 전 마냥 검연적게 웃습니다.. 어른, 고맙습니다. 건강하세요.. *지금은 함바우연못이 사라지고 성주 문화예술회관이 들어서 있습니다. 어린시절 저의 놀이터이자 자연학습터 였는데... 문화예술화관 터를 닦을 때 미터급 잉어 가물치 한자가 훨씬 넘는 붕어 두자넘는 메기 정말 많이 나왔지요 그래서 제가 아는 누구누구집 연못에는 그때 솥에 걸리지 않은 대물이 많이 있습니다 어른들은 다 돌아 가셨지만 산 증인만 살아 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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